3. 이민 목회의 지표와 목표 | 관리자 | 01.15.09 | 3498 |
5. 이민목회의 3대 지표 A. 영성의 삶 (life spirituality) 애굽에 있었던 히브리인들의 문제는 애굽의 생활과 가치관이 그들 속에 내재화(internalization)된 것이었던 것처럼, 주변인간의 가장 큰 적은 주류사회의 지배논리를 여과 없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사회는 소비주의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의식을 노예화시켜버렸다. 의식은 욕망에 달린 것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가 그가 누구냐를 결정짓게 한다. 소비주의는 번쩍거리는 상품광고를 가지고 우리의 욕망을 장악(colonization of desire)하였다. 그래서 이 사회의 욕망은 바로 내가 TV에서 본 것이 되어버렸다. 광고에서 본 그 멋있는 차를 타고 그렇게 날씬한 여인이 곁에 있어야 삶의 행복이 충족되는 것으로 믿게 되어 버렸다. 이 시대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가능성을 잊어버리고 사회체제로부터 주어진 소비품에 자신의 가치와 자아상을 걸고 있는 광대같이 우스운 노예가 되었다. 한 인간의 가치가 어떤 차를 살 수 있느냐에 달리고 말게 되었다. 영성의 삶이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허상의 나뭇잎치마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힘을 받는 삶을 말한다. 즉 신앙이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계급장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덕지덕지 말라붙은 우리 허위와 기만의 껍질들을 깨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나뭇잎치마들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하는 뱀의 유혹처럼 이것을 소유하면 네가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하는 세상의 유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껍질을 깨어내는 근본작업은 세상의 체제유지를 위한 지배논리(royal rationality)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삶의 근본/가치관으로 삼는 것이다. 세상은 경쟁논리를 도입하여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정당화하고 너 없이도 나는 살 수 있고, 너를 짓밟음으로 내가 성공한다는 허위를 심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함께 사는 것이고 참된 성공은 나눔에 있는 것이라는 희년에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B. 공동체 형성 (formation of community) 성서도 세상도 개개인의 성취와 충족(fulfillment)을 삶의 목적 중의 하나로 인정한다. 차이는 세상은 그 개인을 독립체(autonomy)로 생각하고 타인과의 연대성은 필요에 의한 도덕적 유대(organizational connection) 정도로 생각하지만 성서는 개인의 독립성은 유기적 일체성(organic oneness) 위에서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이요, 유기적 일체성을 떠난 개인은 어떤 소유와 성취에도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으며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서의 옮음은 간단히 증명된다. 아무리 많은 성취와 소유를 가진 개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 곁에 참으로 사랑하는 자와 사랑할 자가 없다면 그 성취와 소유는 무용할 뿐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세상의 허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케 하여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가치관이 재정립되기 시작한 삶은 너와 나를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너와 나를 삶의 필수불가결한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하여 그 결과로 필요에 따른 조직이 아니라 자연스레 삶이 어울리는 공동체의 장을 창조하게 된다. C. 신앙인격의 형성 (character building)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필요에 의한 유대로 인식하는 세상의 가치관은 인간 사이의 진실한 일체성을 간과한 결과로 인간관계의 진실성을 잃어버린 채 즉흥적 기교로 대체하여 버렸다. 즉 자녀교육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은 읽지만 자녀 앞에 본이 되는 부모의 인격형성은 관심조차도 가지지 않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성경은 인격을 추상적 개념의 한 인간의 질로써 얘기한 데가 한 곳도 없다. 성경의 인격은 전부 삶의 구체적 이야기(concrete story)로 얘기하고 있다. 다윗의 신앙인격은 다윗의 얘기를 떠나서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성경은 한 곳도 다윗의 신앙인격은 진실 되고 하나님 중심이었으며 등의 형용사적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 안에서의 구체적 이야기로 살아져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인격이 되며 이것을 흔히 총체적 인격(whole character)라고도 부른다. 성경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또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니 등의 표현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얘기가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고, 공중의 새와 백합화를 통해 세상 가치관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여주셨고, 삶의 완성이 생명을 내 소유로 움켜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창조주가 살아계시기에 온 인류 역사를 위해 생명을 나누어 줌에 있는 것을 보여주신 예수의 얘기로 변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6. 이민목회의 3대 교육목표 (Three educational objections) 한 인간의 삶 속에 비전이 열리기 위하여서는 나는 어디서부터 왔으며(past)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future) 그 나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present)가 분명히 정립되어야 한다. 한인 이민신앙이 교회생활로 끝나는 종교적 전통의 유지를 넘어서서 사회와 역사를 변혁시키는 생명 자체가 되기 위하여서는 교회교육이 전인격적 비전을 여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A. 신앙교육 (faith education) 성경은 모든 세대에 그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다시말하면 경직된 교리를 배우는 것으로 산 신앙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다. 다윗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다가(행 13:36-새 번역)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예수 안에서 새 언약의 백성)은 그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성경배움은 교리적 원리(dogmatic principle)를 넘어서서 이 시대의 우리의 상황(context) 속에 무어라 말씀하시는지에 귀를 기울인 깨달음이어야 한다. 이민교회의 성경배움은 따라서 우리의 상황에 대한 영적 통찰력(spiritual insight)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분석(political, socioeconomical, and cultural analysis)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히 교리적 원리확인에 그치는 즉, 구체적 상황에 연결되지 않는 구름잡기의 성경공부는 더 이상 생명력, 사회와 역사를 변혁시키는 힘이 있을 수 없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은 지나치게 사회경제적(socioeconomical) 분석에 치중하다 보면 성경을 상황에 끼워 맞추는 이념화(ideolization)의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성경은 어떤 억눌린 상황에 대하여서도 혁명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도 혁명성을 띈 것이었으나 그 혁명성은 단순히 계급투쟁적 성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역사적 상황(context)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별하되 또한 성경(text)이 말씀하시는 바를 깊이 주목하여야 한다. 이 성경이 선언하는 바를 깊이 알기 위하여서는 성경본문의 상황적(sitz em leben)이해가 바로 되어야 하며, 본문 자체의 의미를 바로 깨달은 후에 건강한(sound) 적용으로써의 본문의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성경의 삶의 자리에서 체험되고 고백되어졌던 하나님의 우리에게 선포되어져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으로 체험되고 고백되어지는 것, 그것이 이민교회에 필요한 신앙교육이다. B. 뿌리교육 (root education) 뿌리의식의 중요성은 강조하기가 오히려 새삼스럽다. 그러나 한인이민자에게 바른 뿌리의식의 정립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 35년의 후유증으로 식민지 사관적 역사이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 자신에 대한 많은 부정적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엽전, 조선 사람은 뭉치지 못한다든지, 꼭 끼리 끼리 경쟁한다.든지 등의 숱한 부정적 자아상을 비판 없이 그대로 인정하며 2세들에게까지 주입시킴으로 말미암아 한인이민자들의 건강한 자의식 형성에 막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조들의 삶과 역사 속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그 손길을 발견하여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예비되었는지 고백할 수 있는 건전한 뿌리교육과 이를 통한 열린 민족 공동체의식(open ethnic-consciousness)의 정립이야말로 이민교회가 마땅히 담당할 과제인 것이다. 한인이민교회의 뿌리교육은 적어도 한국어, 한국역사, 한국문화의 예술에 대하여서는 전문성 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각 교회는 개인 교회 이기주의를 넘어선 협력이 마땅히 되어야 한다. C. 비전교육 (vision educational) 소수 이민공동체의 가장 큰 약점은 주류사회 진출을 부정하고 스스로 안에서만 삶의 장을 형성하는 Mobility Trap이다. 경쟁의 벽이 너무 두껍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차별(invisible discrimination)은 스스로를 움츠리게 만든다. 이민교회의 교육은 공동체 소속원들에게 주변인간의 해석학적 우의성과 창조적 가능성을 성경을 통해 동기부여를 시키며, 부조리한 사회를 변혁시키는 성경적 능력을 가진 이들로 교육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전의 지평을 여는 훈련 (예: 단기선교 훈련 또는 지역사회 봉사훈련)과 개개인의 은사를 개발시키는 특기교육과 취미교육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7. 이민교회의 당면과제 : 15.세 한인교회는 99%는 1세 중심의 교회이다. 1%는 2세 중심의 영어회중교회이다. 우리 이민교회에는 1.5세(대게 6-18세에 부모를 따라 이민 왔거나 또는 중고, 대학 때 유학 왔다가 정착한 세대)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심된 교회는 없는 실정이다. 1.5세는 1세 사회에서도 주변에 있고, 2세 사회에서도 편안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이민교회의 내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세대들이다. 이들은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이중문화적 이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1세와 2세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가교의 세대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2세들은 대학 졸업 후 겨우 3%만이 교회로 돌아온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앞으로 20-30년 후면 지금 수백 개 있는 한인교회들은 2세들과의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 대부분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1.5세들을 한인교회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하나임교회는 1세들이 1세들 자신을 위하여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1세들이 모여 1.5세들을 세움으로 2세 교회로 한인교회가 발전되어지기를 기도하는 교회이다. 1.5세들은 신앙적으로 열정을 가졌으며 한국과 미국 양쪽 사회와 문화를 다 앎으로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세대이다. 이 세대를 일깨우고 세우고 파송하는 이 시대적 사명에 하나임교회는 앞장서려 한다. 하나임교회는 1.5세를 세우는 데에 쓰임받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 1세의 신앙 열정을 오는 세대들에게 연결시키고 계발시켜 나가는 이민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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