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나 광물세계와 달리, 동물의 세계는 공간의 사용이 존재의 기본이 된다.
우리의 공간사용의 핵심이 식탁이다. 동물의 세계에도 함께 먹음이 있다. 하지만 그 함께 먹음이 단순한 생존을 위한 협동을 넘어, 관계와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식탁뿐이다.
함께 먹음이 없는 공동체는 조직일 뿐이다. 기능은 있지만 존재의 양육과 피어남은 없다. 함께 먹음이 없는 관계는 평면적일 뿐, 입체적 통합(integration)을 피울 수는 없다.
이상하다! 젊은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면 꼭 같이 먹기가 데이트에 들어간다. 교황과 영국여왕이 만나도 클라이막스는 만찬연회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면 같이 먹는다. 이 시대의 가정의 위기는 모든 것 이전에, 한 식탁에서 같이 먹음의 상실이다.
한 바가지 안에 열무김치와 꽁보리밥을 고추장에 비벼, 옹기종기 콧등에 땀 흘리며 먹던 존재의 원천적 연대성을 잃어버린 우리는, 외로움에 방황하고 있다.
이 시대의 사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이론도 발명도 아니다. 식탁의 회복이다! 식탁에 마주 하여 존재로 나누는 서로를 향한 안타까움 - 생선 몸뚱이는 너에게로 밀며, 생선은 머리가 맛있어 하는 ? 이 회복이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또 하나의 새 상품은 반짝이는 만족 후, 더 깊은 초라함을 남길 것이다.
식탁은 하나됨의 뿌리이며, 우주와 영원을 넘는 비전도 이 뿌리 없이는 결코 피어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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