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하시는 하나님과 생명
목회의 핵심 사역은 말씀나눔이다. 하나님의 뜻을 삶에 나누고 증거하는
일이다. 이 일에는 3가지가 관계된다.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로 그 뜻을 지혜롭게 전해야 한다. 셋째로 그
전해진 하나님의 뜻이 공동체에 성육되도록 양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이 당연한 과정이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했을
때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은 무언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해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해주시기는커녕,
우리에게 좋은 것을 오히려 파괴하신다. 우리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게 하신다. 애굽에서 끌어내어 광야를 지나게 하신다. 내 평생에 땀과
눈물의 의 를 한순간에 배설물 같게 하신다.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지게
하시고 베드로의 통곡이 터지게 하신다.
이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이시고,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이유는 당연하고
간단하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복을 살지 않고 저주를 산다. 생명을 살지
않고 사망으로 산다. 예를 들면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낙제를 했을 때,
아이는 위로와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 때에 아이에게
화를 내고, 탓하고, 정죄하고 판단을 내린다. 또한 삶 속에서 진정 나누어야
할 이야기는 결코 나누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될 또 좋을 것도 없는 이야기는
꼭 하고 만다.
왜 그럴까? 내 안에 수치, 불안, 저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에 수치,
불안은 어떤 개념이 아니고 내 안의 나 즉, 내면아이이다. 모든 일을 수치와
불안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고 듣지 못하는 내면아이가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었고 사회적응을 수 십년 했는데도 어이없는 분노, 시기, 수치가
튀어나오는 것은 그 내면아이이다. 예를 들면 오십이 되어서도 다른 차가
끼어들면 화를 낸다. 분노와 시기의 어린아이가 있다. 또 식당에 가서 부인의
감정보다 웨이트레스의 감정에 더 신경이 쓰인다. 내면아이의 수치가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 내면아이 속에는놀라운 아이가 들어있다. 한 번도 기를 펴지 못한,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만날 수 없었던참 나가 들어있다. 하나님 형상의
나가 들어있다. 이 아름다운 나는 상처 난 내면아이가 만들어 온 껍질과
성벽을 해체 해야만 피어날 수가 있다. 이것이 하나님은 해체의 하나님이신
이유이다. 이 하나님을 만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피어난 이야기들의
모임이 성경이야기이다. 성경은 역사보다는 자서전에 가깝다. 그러나 반-
자서전이라 해야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훌륭하게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훌륭한 나가 죽은 뒤 피어난 생명의 이야기이니까. 이 해체의 하나님을
갈망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보라!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내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당신께 대하여서만큼은 절망치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로 하여금 나그네의 온갖 비탄을 맞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은혜의 불꽃이 나를 휩쓸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로 온갖 모욕을 겪게 하여 주옵시고
내가 스스로 견디어 나가는 것을 도와 주지 마시옵소서.
내가 발전하는 것도 거들어 주지 마옵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고집이 꺾어지거든
그렇게 하신 분이 당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불꽃과 그 고뇌와 그 아픔을 낳아 주셨다는 것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즐겁게 멸망하고 즐겁게 망하고 즐겁게 죽겠사오나
다만 당신의 품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탄과 비장함을 느끼게 하는 헤르만 헤세의 이 기도는 성경의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해체의 하나님을 만나 생명이 피어난
사람의 고백이무익한 종이다. 숱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피어났지만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니라 생명에서 피어난 것임을 알기에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한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의 이야기로 글을 마친다. 남강 선생님은 오산학교를
설립하여 숱한 애국자들을 길러내신 분이다. 그는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큰 성공을 이루고 당대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일어나
그가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사업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는 도산 안창호가 평양 모란봉에서 애국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 도산 선생은 30대의 젊은이로 미국으로 유학하러 갔다가, 조국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처지임을 알고 귀국하여 곳곳에서 애국 강연을
하고 다니던 때였다. 남강은 가서 도산의 연설을 듣기로 하였다. 가서 보니
30대의 청년이 정열에 넘쳐 모인 민중들께 호소하는 것이었다.여러분
우리가 이 4천년 역사의 조국을 잃지 않고 지키려면 썩어빠진 옛날의 모든
나쁜 버릇을 버리고 새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 힘을 기르려면 오로지 새
교육을 일으켜 새 사람을 길러내는 길밖에 없습니다.큰 감동을 받은 남강은
돌아가서 머리를 깎고 술,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예수 믿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시작한 학교가 오산학교이다. 1930년
5월 3일 오산학교 뜰에서 남강 선생님의 동상 제막식에서 그는저는 한
것이 진정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을 기뻐했을 뿐입니다.
진실로 민망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진실로 생명의 길로 사셨다. 이 길로 걷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임교회가
우리 삶의 부족을 도우시는 종교의 하나님에서, 우리를 해체 하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가득하게 하시는 성경의 하나님을 만날 벅찬 소망으로 씨앗을
심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