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바라보며
제게는 제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있습니다. 부족함이나 못남이 없어서가 아니고 제가 마칠
저의 이야기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직 부족하지만 가꾸어가는 이야기가 있기에
꿈이 있고, 소망 속에서 담대할 수 있어서입니다. 바라보는 나의 이야기가 없으면 그저
편안하려 하고, 어려움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며, 가장 살고 싶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함께 각자가 남길 이야기를 바라보며 나아가십시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중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 주어서 같이 나눕니다.
사랑하는 이학권 성도님께
한 가지 목적지를 향해 흔들림 없이 갈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 . .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나가는 하나임 식구들의 축복임이 틀림없습니다.
금주 화요일 묵상 내용을 성도님과 나누고자 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6-7. DTC III 과정의 암송구절이기도 하죠. 그 당시 암송할 때는 그저 제가
워낙 좋아하는 구절중의 하나이었기에 즐겨 암송을 했었는데, 이번 주 묵상에서 주님께서
저의 마음을 만져주셨습니다.
바울은 분명 이 땅에서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삶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시간을 감지할 수 있다는 의식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축복이
분명합니다. 제가 뉴저지를 떠나는 결정의 기로에서 브라질에 취업 제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나 자신의 보다 나은 형편을 위해. 나 자신에게 보다 더 걸 맞는 세상의 꼬리표의
유혹이 그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까 자문해 보았습니다.
더욱이 아이들까지 떠나간 상황이 마치 만사 척척 주님의 섭리로 이루어짐 같이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나의 결정을 정당화 했던 것임을 드려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자유
선택이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중보하시는 성령님께서는 만나는 지인들을 통하여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시고 섬기는 교회를 통하여 "나의 달려갈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주일 포어권의 약 30쌍 부부를 상대로 `관계`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처음으로
주관했습니다. 세미나를 하던 중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갑작스레 부어주신 이 같은 말을 하게
됐습니다. "나는 30년 넘게 모두가 인정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완벽한 가면을 쓰고
나의 인간적인 노력과 정성으로 교회를 섬겨왔다.
그러나, 브라질로 돌아오기 한 7년간 나의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쓰게 하신 Life Mentor를
만나 나 라는 인간의 진실을 만나게 되었다. 그 만남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돈으로도 살수
없는 축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바꾸어놓은 나의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멘토님과의
이별을 기하며 모두에게 선포했다. 나와 내 아내와의 삶은 분명 나와 관계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의 멘토가 되길 원한다.
나의 경험과 나의 삶을 나누며 유통하는 진정한 멘토로서의 인생이 여러분들과 어우러져
살아지길 기대한다."
이곳 브라질도 불경기라는 자본주의의 경제 싸이클 덕에 불평불만의 소리들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습니다. 벌어드리는 수입에 비해 씀씀이가 헤픈 정부의 불균형 정책으로
현지 화폐는 계속해서 평가절하 되어 인플레 문제가 심화되어가고, 눈앞에 보이는
선거운동에만 정신이 팔려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장기 계획이나 비전 제시가
부재한 상황입니다. 교포 커뮤니티의 불경기 타령도 교회 속을 파고 들어와 교인들의 중심
대화는 "어렵다!"입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바울사도의 고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의 상황임이 분명합니다.
호세아서 강해 설교에서 언급된 목사님의 이야기가 선명히 메아리쳐 울립니다. "우리
모두는 믿는 만큼 삽니다." 네. 목사님께서 늘 말씀해 오신 삶의 진리이기도 하죠. 나의 삶의
나누어지지 못하고 누려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믿음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6-
7). 현상으로 나타나는 육안의 믿음은 결국 나의 잠재를 질식시킬 뿐만 아니라 나의 이기만을
극대화 시키는 말 그대로 껍질의 믿음이요 현 상황의 관계없이 주님의 계획을 믿고, 구하며
찾고 두드리며 나가는 믿음은 곧 창세기 45장 6-7절에 선포된 요셉의 믿음이자, 믿는 만큼
살아지는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믿음의 계획임이 틀림없습니다.
아, 이학권 성도님이 많이도 보고 싶습니다. 삶을 같이 나누어 온 하나임 동지들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늦어도 한 8월경엔 다녀오게 될 것 같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주어진 생명을 마음껏 누리며 나누시는 목사님과 하나임 식구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축복합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이야기를 선포하는 중기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중기의 두 아들
진혁이와 민혁이가 갈등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필요한 갈등이요 꼭 지나가는 갈등이기에
저는 그 갈등을 지나 영광스럽게 설 그들을 이미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이 믿음이 중기와
유진이에게도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내 삶을 마친 다음에 남길 나의 이야기를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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