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 II 2018-01-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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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 II      


                             

하나님나라가 선포되면 우리를 상당히 불편하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물들어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끌려왔다가 떠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우리가 그 꿈에 끌리지만 또 물러가고픈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쩌면 가장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진실로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세상은 그것을 담보로 모든 것을 억누르고 왜곡시켞기 때문에 불편해진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성의 이야기입니다 


1.   음담패설이 아닙니다. 


성의 이야기는 음담패설이 아닙니다. 음담패설은 성의 이야기가 아닐 뿐 아니라, 왜곡이며, 타락이며, 인격 파괴이며, 추잡한 에고(ego)의 쓰레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저속하게 만드는, 성도에게는 그것이 무언지 조차 모르는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의 이야기는 우리가 치아 관리를 얘기하듯이 생명관리의 정상적인 나눔으로써, 특별히 부끄럽거나 저속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화적으로 치아얘기를 하는 것이 금기(taboo)가 되어 있어서 이빨은 썩고, 냄새는 나고, 그래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관계 기피현상이 생기고, 자존감이 파괴 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감추느라고 온갖 이상한 짓들과 방법이 자행된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성은 쉬쉬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복된 선물이 아니라 음침하고 숨겨야 되고 부끄러운, 그러면서도 뒤로는 또 다른 태도로 모든 사람을 위선적으로 만드는 사탄의 주무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정체성(identity)의 핵심 


성경은 사람의 창조를 얘기할 때에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고 선포하는 유일한 책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고상한 답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남자와 여자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의 출발이 남자냐 여자냐 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완성도 성적입니다. 저의 정체성의 출발은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며, 완성도 내가 남성으로서 온전히 만족감과 자존감을 가질 때 나는 모든 관계를 이해와 용납으로 누리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쉽게 얘기 하면 삶은 한 사람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서 자라고, 성숙해지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한 인간이 성적으로 자유하고 순결(문화적 의미 즉, 정조가 아님)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결코 성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입니다. 


3.   왜곡된 성 


이 주제는 책 한권도 모자라는 것이지만, 쉽고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성은 남자는 오로지 예쁘고(문화적 의미로, 모든 사람은 그 모습으로 아름답습니다) 날씬한 여자만 좋아하고, 여자들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일도 서슴치 않습니다. 문제는 그 자체보다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중독이고, 병이 심하게 들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예뻐지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 기호는 사춘기에 대부분 형성됩니다. 그 기호를 lovemap이라고 부릅니다. Lovemap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면 각 남성은 자신의 배필을 향한 자신만의 기호가 만들어 집니다. 내가 어떤 여성에게 끌리느냐는 남들이 만들어 줄 수 없는, 내 생명 피어남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왜곡된 이 세상의 사춘기는 내가 누구인 것을 발견하기는 커녕, 수많은 거짓율법에 초토화 되는 시기입니다. 우수해야 돼, 공부 잘해야 돼, 잘 생겨야 돼. 말 잘들어야 돼, 성공해야 돼, 지면 안 돼, 실패하면 안 돼, 실수도 안 돼.. 생명을 억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거짓으로 살인을 하는 것(8:44)입니다. 그 중에 핵심이 성입니다. 사춘기의 성은 이 세상에서 불안과 두려움과 수치의 본부가 되어서 아무도 자신의 성을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강해야 돼, 여자는 예뻐야 돼에 짓밟혀 자신을 수치스럽게 보는 마귀의 전략에 완전히 밥이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억눌림 위에 마귀는 거짓을 기름붓습니다. 광고, 매거진, 미디어, 상업, 음악, 예술등을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여성상을 순진한 사춘기 남자 아이들에게 세뇌시킵니다. 결과는 오로지 미디어가 만들어 낸 여성상만을 아름답다고 세뇌되고, 여자는 세뇌된 남자의 이미지에 자기를 맞추느라고 자신을 스스로 버립니다. 그래도 아직 자신됨의 매력을 살 줄 아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매료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됨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니까요. 


왜곡된 lovemap의 부작용은 삶의 전반에 넘칩니다. 무엇보다도 결혼관계가 다 파괴되어갑니다. 자연스러운 lovemap이 형성되면 미디어가 말해 준 짝이 아니라 제 눈의 안경(?), 천생연분(?)을 만나게 되는 데, 남자는 오로지 예쁜 여자, 여자는 오로지 돈 많은 남자를 찾으니 만나지지도 않고 만나면 여기가 아닌게비여가 됩니다. 이러한 lovemap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반생명 역사를 만듭니다. 


첫째는 감정 상실된 성입니다. 성은 감정과 감각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내 존재가 원하는 lovemap이 아니라 세상이 세뇌한 lovemap이니까 감정(존재의 느낌)은 억눌러야 되고 감각만 남게 됩니다. 감각만으로 성생활을 하려니 자극적이어야 될 뿐 아니라 점점 더 그극적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예쁜 여자, 젊은 여자의 자극이 필요하다 못해 어린아이들까지도 자극에 동원해야 되는 비극적이고 파괴적 성에 처해있습니다. 


둘째로, 성의 본질은 관계입니다. 성적관계는 자신의 소중함과 신비함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는 오랠수록 좋은 것입니다. 어릴 적 친구가 좋듯이. 그래서 건강한 부부사이에 소중하게 나누어진 성은 한 몸의 친구를 만들어 육체를 가진 이 땅의 삶에서 만물이 하나 되는 하늘의 신비를 누리게 합니다. 


성은 결코 힘의 문제가 아니고 인격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lovemap이 잘못 되어서 자신의 진정한 반려자보다는 세뇌되어 왜곡된 반려자를 만났으니 감정은 억눌려 있고(감정의 억눌림은 lovemap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감각으로 관계를 해야 하니  연애천국, 결혼지옥이라는 불가능한 일이 실제가 되어버렸습니다. 만나서 3년을 넘어가는 남녀사이가 오히려 이상해진 미친 시대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말 미친 것입니다. 남자들은 허상의 자극에 미쳐서 자신과 가정과 삶을 스스로 파괴할 뿐 아니라, 어떻게 회복하고 가꾸는지 조차 모르고, 여자들 역시 왜곡된 성의 소용돌이에 피해자가 되어 그저 안 예쁠까봐, 나이 들어 보일까봐 전전긍긍하며 모두가 저주 아래 살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은 나의 나됨(I am who I am)입니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나로의 회복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성적 정체성에서 나됨의 회복입니다. 


킨제이 보고 이후에 가장 광범위하고 과학적으로 조사된 제이너스 보고(1992 9년간8천 샘플)에 의하면 성적 문제에 신앙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신앙적으로 보수적이고 열심인 사람들이 외도, 음란 등에 훨씬 더 많이 연계되어 있습니다(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 죄의식과 수치감으로 억누르고 겉은 괜찮은 척 하는 것은 육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가짜가 되는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하나임교회는 목회2기로 들어서면서 C-Light Zone세미나들을 통하여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탄의 뿌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의 중보가  필요합니다. 함께 생명의 영광을 피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