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 - VI2018-01-25 23:17
Name Level 10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 - VI


나됨 : 관계의 핵심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영적전쟁이며, 그 핵심이 나됨에
있는 것을 이미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나됨을 그 자체로만 생각하면 개념의 장
난으로 끝나기가 쉽습니다. 나됨은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삶의 중심문제
입니다. 나됨이 실제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관계입니다.
나됨을 누리는 사람의 특징이 너됨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의 문제
는 너를 너로 용납해주지 못하고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로서의 너는 안
되니까, 고치면 용납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문제는, 너를 너로 용납 못
하는 것의 이유가 너가 완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두려움을 상대에게 투사(Project)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누구에
게도 완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이나 죄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정죄하는 이유는 내 안에 감추어 놓은 (사실 억눌러 놓은) 수치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치심중독을 가진 부모는 자녀가 연약할 때에(도움이 필
요할 때에) 오히려 화를 냅니다. 자신 안의 수치가 자극되기 때문이고, 또한 그
것을 전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도와야 될 때에 오히려 정죄하고 화를 내게 됩니
다.


더불어살기 Life-Together


하나임교회의 목표가 더불어살기 입니다. 그러나 그 더불어살기가 우리 모두가
성숙해서 갈등이 없고 관계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항상 경계해야 하
는 것은 '하나님같이' 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너에게도, 또 우리의 관계에도 결
코  '하나님같이' 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요구하는 순간 우리는 마귀
의 거짓에 사로잡혀서, 정죄, 실망, 자괴감, 혐오, 분노 심지어 절망까지도 갖
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적으로 더불어살기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모습을 그대로 용납해주기 때문에 (결코 정죄가 없기 때문에 롬 8:1) 우리 서로
각각 자기자신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강력한 것입니다.
내가 나일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욕망에서 자유해집니다. 내가 굳이 갖지 않아도
또는 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연연하거나 '척' 하지 않습니다. 욕망에서 자유하면
세상의 거짓유혹이 그 힘을 상실합니다. 그러면 삶의 모든 에너지가 누리고 피
어나고 자라는 데에 집중됩니다. 그 삶은 열매가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맺습
니다.


선악과, 긑없는 거짓과 저주
그러면 그렇게 간단한 더불어살기가 이토록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
은 우리의 의식이 선악과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에 사로잡혀 있다
는 말은 상황에 사로잡혀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극복함으로 가치를 창조하고 의미를 세워 생명이 성숙하도록 주시는 선
물입니다. 상황을 주시는 하나님게서는 어떤 상황도 초월 할 수 있는 생명을 주
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각 생명의 수준에 알맞도록 상황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함에도 거짓에 속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우리는 상황이 
오면 이것이 내게 좋은 상황이냐 나쁜 상황이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 상황
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폐해지고, 속이는 마귀의 뜻에 붙들려 좋은 상황이면
욕심을 내고, 나쁜 상황이면 피하고 부정하기에 급급해집니다.
더불어살기의 용납은 사라지고, 서로 간에 정죄와 판단이 앞서는 이유는 상황
에 사로잡혀 상황의 주체인 생명은 정작 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학교에서 큰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에 생명을 보면 돕고 격려 할 텐데,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보기 때문에 분노, 책망은 물론 변명과 정당화에 급급해
지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더불어살기
그러므로 성경의 더불어살기는 희년적 원리입니다. 희년적원리는 공동체의 약
함과 부족함을 공동체의 중심에 품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서는 약함은 언제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가 됩니다. 중심은 언제나 강한자의 것이기 때문 입니다.
성경적 더불어살기는 우리 모두 부족함이 없어서 갈등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용납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갈등을 조화로 전환
시키기에는 부족합니다. 갈등을 무마하는 정도가 아니라 갈등이 오히려 우리를
더 성숙하게하는 더불어살기는 약함을 중심에 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를 우
리는 다 나의 성공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내가 누
구냐를 나의 약함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내가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압니다.
또한 아무도 판단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웃이 고맙습니다. 더 이상 이웃을 선
악과로 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연약함을 중심에 품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더
불어살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