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사선을 넘어서2018-01-25 23:41
Name Level 10

사선을 넘어서


사선을 넘어서는 일본의 성자라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꼬(하천풍언) 목사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21살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 말기(요즈음으로는 암말기격)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의 스승이자 세례를 준 마야스 선교사가 와서 임종예배를 드리고 고별


찬송가까지 불렀다. 그러나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체험하고 죽음을 기다릴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빈민굴에


들어갔다. 놀라웁게도 그는 72세 운명까지 빈민들과 나중에는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감된


운동가들의 가족을 돌보는 사역을 하였다.


그는 생사의 분기점에서 인간은 애통이 터지며, 그 애통에서 육체 즉, 겉사람이 깨어지며


사선을 넘는다고 한다. 이 사선을 넘을 때에 인간은 세상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와


세계의 깊은 뜻과 불멸의 영혼을 만난다고 한다. 그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밝은 대낮에 모든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까이 있는 것 조금 외에는 아무 것도


못 본다는 것이다. 오히려 짙은 밤의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우주 끝의 별들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의 안타까운 설명 속에서 십자가와 하나된 신비와 그 안에서 넘는 죽음과


생명의 경계선이 느껴진다. 내 생애 처음으로 십자가에서 주님이 나를 안고 있던 것을 본


것이 떠오른다. 주님의 보혈이 내 세포와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날 이후로 그 사실은 나의 기도와 고백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우주 끝까지가


나와 하나인 것을 느끼며 생명의 광대함과 신비는 어렴풋이 보기 시작했다.


성경도 이 사선을 넘는 이야기들이다. 모리아 산의 이삭제사, 야곱의 얍복강의 체험,


사명 받은 모세에게 임했던 죽음의 사자, 광야의 다윗, 다메섹의 바울 등 많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것이 이사야의 경험이다. 그는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된다. 그 영광 속에서 그는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한다. 히브리적 표현이지만 하나님의 영광 앞의 피조물의 소멸을


고백한다. 이때에 그의 죄가 사해지고 오히려 보내심을 받는다. 마치 가가와 도요히꼬의


이야기와 같다. 유한한 피조물이 그 존재의 한계성(사망)에서 만나는 지점에서 터지는


애통함에서 존재의 더 깊은 영생(생명핵)을 만난다.


겉사람이 드디어 깨어지고 생명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말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 즉 생명핵이 피어나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에는 이것들이 계속 나온다.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도 세리의어찌할꼬, 가슴을 치며 멀리서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하는 애통이 그를 의롭게 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 시몬의 이야기에서도 차마 앞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뒤 곁에 서 있다가 옥합을


깨어 자신의 머리로 예수의 발을 씻는(인류사에 이만한 감동이 또 있을까) 여인에게


사랑함이 많은 즉 사함이 크다 라고 하신다. 그 장면에서 그 여인의 죄인이라는 조건과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뿐인 시몬의 불쌍함이 간절히 느껴진다. 인간끼리의 예와


경우와 평가가 전부였고 그 정죄에 눌려있던 나의 옛모습이 겹쳐진다. 이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애통함의 반대는 결코 기뻐함이 아니다. 겉사람의 의로 무장하고 안에서는 떨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다. 생명의 기쁨은 항상 애통함으로 깨어진 가슴에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은 애통한 심령에 임하는 것이다. 신약적으로는어찌할꼬에 임하는 것이다.


이사야 61장은 마음이 상한자, 포로된자, 갇힌자를 고치고 자유케 하셔서 슬픔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의 옷을 입히시려 성령이 오신다고 선포한다. 그래서 성령님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이시다. 스스로 부자라(물질이든, 신앙이든) 하는 자에게는


귀찮은 소식이다.


성경의 애통이나 통곡은 욕망충족의 불충족에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 아니 욕망불충족은


오히려 껍질을 단단케 하고Im fine, 나를 초라하게 보지 마세요에 목숨과 자존심을 걸고


산다. 성경의 애통은 존재의 유한성과 그 허무를 만남에서 일어난다. 탕자가 죄인됨을


깨우치는 순간에 애통함이 일어났듯이. 그 사선에서 비로소 욕망의 한계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야가 영원을 향하면 창조의 신비와 불멸영혼의 빛을 만난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통곡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