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 - I2018-01-25 23:16
Name Level 10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 - I

오늘부터 몇 회에 걸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
떤 것인지 같이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 행복한 삶


   예수님께서 나누신 하나님나라의 꿈이 가장 선명하게 요약된 것이 산상수훈
   (마 5-7장)입니다.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을 Blessed are 로 여십니다.
   히브리어 아쉬레!를 번역한 것인데 "아, 복되어라!" 라는 감탄사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의 삶은 무엇보다도 경이로울 정도로 복되다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나라의 삶의 특징은 처절한 저주입니다. 평생을 불안과 두
   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 신비의 세계를 누리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생
   명을 가지고 살면서도, 생명의 신비를 전혀 누리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이 다스려야 될 세계에 사로잡혀 살지 못할까(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는 생존의 종노릇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히 하
   려 오셨습니다. (요 10:10). 즉, 우리가 상실한 생명주권(다스리라 : 창 1:
   28)을 회복하여 허무에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롬 8:21)에서 자유케 하
   시는 것입니다. 자유의 첫째 특징은 기쁨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자유하지
   않으면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골프를 아무리 좋아해도 만약 매일 쳐야하
   며, 하루라도 빠지면 큰 형벌이 있다면 골프는 더 이상 기쁨이 될 수 없습니
   다. 그래서 자유함으로 피어나는 생명의 특징은 행복이며, 행복함을 '복되
   다' 라고 표현합니다.


* 행복한 삶의 3가지


   행복한 삶이란 표현에는 구체적으로 3가지의 누림이 들어있습니다.
   첫째가 '나됨' 의 누림입니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서
   자신을 피어가며 열매 맺는 삶입니다. 나됨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
   을 경쟁대상으로 보는 대립적 구조가 의식에 없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이기
   거나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인생관과 철학을 즐기며, 항상 의미있는 목표와
   과제를 추진해 나갑니다. 늘 활동적이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압니다.


   둘째가 '관계' 의 누림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확신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허용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다양하고 모두를 존중하
   므로 누구에게서든지 새로운 배움을 얻으므로 계속 성숙해 가며 포용적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나눔으로 다른 이들이 회복되고 풍성해지는 기쁨을 알기
   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발전을 기뻐합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많은 관
   심이 있고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셋째가 '세계' 의 누림입니다. 더 이상 삶은 대립과 경쟁이 아니므로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누림에 있어서 자유하다는 말은 모
   든 것을 그대로(as is) 받아들이고 그 각각의 신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입
   니다. 즉, 어려움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기에, 어려움이 주는 성
   숙과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피해야 되거나 없어야 되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만남으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합니다.


* 행복 속의 고독


   행복하다는 말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식의 기분 좋음과는 다른 말입니다.
   열린 눈에는 이토록 복된 생명을 주셨는데도, 그 복됨을 알지도 누리지도 못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저주로 서로 물고 뜯는 데에 쓰는 세상에 대한 깊은 아
   픔과 연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늘 흥청거리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고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자주 홀로 아버지 앞에 나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고독과 중심의 아픔 때문에 이 사람의 행복은 비로
   소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열매가 됩니다.


* 무조건 일단 행복하자


   최근 묻지마 범죄가 잦아지자,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이 합동으로 연구하여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런 이해가 되지 않는 폭력의 공통적
   뿌리는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에 불행은 단순히 자신 만의 불행이 아니
   라 먼저 주변의 불행입니다. 즉, 부모가 불행하고 그래서 자신도 불행한 데
   그 결과로 친구관계도 불행해집니다. 이러한 복합적 불행구조에서 그런 범
   죄가 나온답니다. 불행은 무엇보다도 감정공유(empathy)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무차별로 죽여도 상대의 고통이나 비극을 느끼지 못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행복도, 불행도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그것도 가장 전염성이 강한 것
   이랍니다. 연구에 의하면 내가 행복할 때에 내 곁의 사람의 행복지수는 15.
   3%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곁의 사람은 9.5% 또 그 곁의 사람은 5.6%가
   상승됩니다. 즉, 내가 행복하면 옆의 동료는 15.3%, 동료의 부인은 9.5%,
   그 부인의 친구는 5.6%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
   리의 행복은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무조건 행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를 위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행
   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조건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 진정 복된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