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순례 : 헤세드 헤세드는 은혜 또는 신실한 사랑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 의미는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러나 핵심의미는 생명이 그 근원을 만난 것이다. 고기가 물을 만났다는 옛말의 의미이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난 것이다. 존재해야 될 가치와 열정을 만난 것이다. 헤세드를 만나기까지 삶은 허상(illusion)에 사로잡혀 그 목마름과 피곤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헤세드를 만난다는 것은 논리적이거나 윤리적 의미가 아니다. 말과 논리로 아무리 설명해야(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머리로 이해는 되는 것 같지만 실제를 만난 것은 아니다. 헤세드는 만나야 되는 것이다. 만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생명이 피어나고, 피어나는 만큼 생명의 권세와 능력을 누린다. 헤세드를 만나는 길은 말씀 안으로 들어와서 말씀과 같이 흐르다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 밖에서 말씀을 아무리 잘 이해해도 만날 수는 없다, 사랑에 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어도 사랑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씀과 같이 흐른다는 것은 설교를 듣거나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 다르다. 말씀 자체의 흐름 안에 들어서서 같이 흘러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언약의 순례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겠지만 순례가 깊어지는 어느 순간 머리를 잊어버리고 가슴이 말씀의 흐름을 만나고 같이 흐르면서 자신의 시간에 헤세드는 피어나기 시작한다. 종교생활이 하나님과 생명연합으로 바뀌는 유일한 길이 헤세드다. 나의 갈망과 하나님의 나를 긍휼이 여기심이 만나는 것이다. 나의 이해나 노력에서만 피어날 수는 없다. 나를 다해 찾고 구하는 데, 나를 잃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환의 과정을 하나임교회 안에 이미 출발시키셨다. 계속 내가 주체가 되어 내 형편, 내 판단을 따라 종교생활을 계속하면 가장 위대한 것을 놓치는 것이다. 이제, 순종의 역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님의 가슴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그 간에 종교생활을 한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약속의 유업을 외면한 채 계속 광야를 돌아서는 안 된다. 각자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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