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영과 진리의 예배 - 22018-01-25 23:11
Name Level 10

영과 진리의 예배 - 2


I. 영과 진리의 예배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24)


영은 원어적 의미도 우리 존재의 중심을 말합니다. 모든 것은 그 중심으로부터
파생됩니다.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면 삶의 모든 것은 저절로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1. 나의 중심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회중예배


2. 나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므로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는 즉, 삶 자체가
   예배가 되는 것


진리의 쉬운 표현은 진실(truth)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나의 진
실 자체로 나와야 합니다. 일살의 삶에서 우리는 100% 진실로 살아보지 못
하기에 내가 나를 상실하는 삶을 삽니다. 따라서 진실로 예배하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1. 나의 모든 진실로 하나님께 나오는 예배


2. 내가 수치와 두려움 때문에 나 스스로 부인하고 소외시켰던 '나'가 사함과
    회복을 받는 예배


3. 내가 회복되어 내가 '나'로 사는 삶이 출발되는 예배


그러므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질 때 은과 금으로도 살 수 없는 복이 됩니
다. 생명누림과 피어남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II. 예배에 성공하는 삶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출 3:6)


창세기에서 가장 많은 지면이 요셉의 생애에 할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흠 많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델이 될 만한 이상
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거룩하고 본이 된 성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디에도 요셉의 하나님이란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요셉의 생애 어디에도 단을 쌓았다는 말이 없기 때문입
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흠이 많은 정도를 지나서 거짓, 술수, 궤계를 서
슴지 않고 실수투성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 가든지 하
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부족한 만큼 예배 중심의 삶이였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는 사랑의 연합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인간적으로 이상적 삶보다는 부족하기에 중심과
진실로 하나님을 찾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로울 때 의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의 의를 의뢰할 때만이 초월적으로 의로워지는
비밀을 가진 존재입니다.


예배에 실패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가지고도 중심이 허해져서 쓰러집
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실패하여도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일으켜
세움을 입으며 진정한 성공을 누립니다. 다윗의 삶과 예수님의 생애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배의 출발은 회중
예배이며, 그 완성은 산제물 된 삶입니다.


 


III. 예배의 핵심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친밀감(intimacy)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과
예배의 깊이는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수록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즐기고 예배 안에서 자유함을 누립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도 아버지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왜 입니까?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 아버지와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친밀감을 회복하는 장면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표
현하십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0)을 표시한 것이 다 강세 사역동사들 입니다. 5개의 동사가
연달아 나오며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태도를 얼마나 절절히 표현하고 있습
니까.


또 아들을 위해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2-23)라고 행동지시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멀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단숨에 회복해 버리는 것 입니
다. 우리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
버지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회복하시는 '아빠' 인 것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의 처절한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아빠' (막 14"36)라고
부르시며 나아가셨습니다. 이런 친밀감을 느끼고 확신 할 때에 십자가를 지는
것이 가능한 것 입니다. 예배에 성공할 때에 세상에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배의 영광이 체험된 자만이 세상의 영광을 배설물로 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는 말씀은 바로 예배에 해당
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말씀을 통해
확증 받습니다. 그리고 그 친밀감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 입니다.


회중예배가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선포 받고 찬양하며 느끼는 자리라면, 삶은
그 친밀감을 누려서 열매 맺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