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맑은 영혼의 사람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헬라어로 마음의 깨끗함은 카타로스(katharos)이다. 잡티가 없는 순수함을 의미한다. 이
카타로스에서 카타르시스가 나왔다. 눈물로 씻겨진 마음에 오는 맑음을 뜻한다. 어른이
되면 이 씻어냄의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허상의 re-action들이 마음을 채우면서 허무한
욕망의 노예들이 된다. 하나님이 삶의 실제에서 사라져 버리고 조작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만 남게 된다.
이 씻음을 위해 이탈리아의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의 말을 들어보자. 당신이 만약 사막에
가 수 없다면 당신의 생활 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 침묵과 기도를 하라.
그렇게 영혼을 씻어내기 위한 고독을 찾아야 한다. 그게 바로 영성생활이다.
이 맑음을 그냥 보여주는 것이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아직, 때 묻지 않았으며, 쉽게 잘
울어서 마음을 씻어 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닮아 있는데, 그 중심 특징이 차별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람을 볼 때에 높으냐,
낮으냐, 부자냐, 가난하냐, 지위가 무엇이냐 등의 구분에서 자유하고 사람 자체를 본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이렇게 사물의 본질을 본다는 뜻이다.
연말인데 말씀과 연결하여 글을 하나 나눈다.
연말이 다가온다. 수많은 송년회가 개최되겠지.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한국인은 정이 많다고 한다. 이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할까? 무관심,
배타적 또는 적대적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이 매우 중요하다.
학교 동창회, 향우회, 동기모임 모두가 끈끈한 연줄이다. 연줄이 없는 소외계층은
살아가기가 팍팍하다.
최근 어느 모임에 초대되어 간적이 있다. 회장이 자기 옆자리를 권해 앉으려 하니 누군가
자기 동기가 앉을 자리라고 한다. 회장은 중간쯤의 다른 빈자리로 안내했다.
조금 지나자 옆에 앉았던 사람이 역시 자기 동기가 앉을 자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시 일어나 맨 끝 빈자리로 갔다.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고 모두에게
당연한 듯 했다.
그러나 반평생을 외국에서 산 나에게는 참 이상했다. 외국에서는 대개 온 순서대로
자유스럽게 앉고, 설사 자신이 선호하는 자리가 있어도 이미 누군가 앉아 있으면 다른
자리로 간다. 그리고 모르는 옆 사람들과도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다. 그날 특별히
초청되어 간 손님에게도 그렇게 하는데, 전혀 연고 없이 오는 사람은 어떻게 취급당할지
궁금했다.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가는데 어느 사람이 나를 심하게 부딪히며 앞질러 갔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오히려 째려보듯 지나가던 그가 건너편의 누군가를 보더니
만면에 웃음을 띠며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자기가 아는
윗사람이겠지. 똑같은 사람이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랐다.
항상 내 편과 다른 편을 의식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피곤하고 숨 막히는 사회인가.
어느 사회에나 주류층의 텃세는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텃세는 유독 심하고, 사회적
갈등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족, 우리학교, 우리고향, 우리 동기 등 이
우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따돌리고 배제한다. 어디 가서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제대로
대접받기도 어렵다. 오죽하면 대형병원에 입원하려면 그 곳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라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그러니 선거를 하면 같은 지역 출신이 싹쓸이하면서 우리가
남인가 하겠지.
현재 독일의 국가원수인 요아힘 가욱 (Joachim Gauck) 대통령은 옛 동독 출신이다.
2005년 독일의 최초 여성수상에 선출된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현 수상도 옛
동독 출신이다. 동서독이 통일된 후 8년 만인 1998년 국가 서열 2위인 연방하원의장에 옛
동독 출신인 볼프강 티어제 (Wolfgang Thierse)가 선출 되었을 때, 독일사회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2005년에는 독일의 양대 정당인 기민당 (CDU)
과 사민당 (SPD) 당수가 모두 옛 동독 출신이었다. 통일 전 서독과 동독의 인구 비례는
4:1이었다. 동독 출신 중에는 아직도 자신이 2등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특히 동독에서 공산당 간부로서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포용했고 똑같은 권리를 부여했다. 나아가 동독 출신을
자신들의 국가지도자로 선출했다. 동서독이 분단된 후 1990년 10월 통일될 때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동독인은 모두 530만 명에 달한다. 통일직전인 1989년에는
39만 명, 1990년엔 40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대거 탈출했다. 동독주민의 대거
탈출이 동독 붕괴와 급작스러운 동서독 통일의 주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서로 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독 사회는 동독 주민들을 모두 수용했고 정착하도록 했다.
동독인들이 서독 사회에서 멸시받고 적응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넘어왔을까? 만약 동서독이 통일되지 못했다면, 유럽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재의 독일이 됐을까? 나아가 수많은 동구권 국가를 포함한 유럽연합 (EU)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역사는 항상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죽음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우리나라로 건너온 2만 5천여
명의 탈북자 중 상당수가 우리사회의 편견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나
힘들면 되돌아가려는 사람까지 생겼을까. 그런데 통일을 하겠다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어떠한가? 현재 약 1백40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농촌총각에게 시집와 아이를 낳으며 살고 있는 여성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마다하는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우리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외국인들을 우리는 따뜻하게 대하고
있는가? 해외의 우리 동포 7백50만 명만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가? 해외동포의 성공에는
환호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멸시한다. 이들도 우리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자기나라로 돌아간 외국인들의 반한(反韓) 감정과 한국인 혐오증은 결코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
현재 독일인구 8천2백만 명 중 외국인은 약 7백20만 명이다. 그러나 그동안 독일 국적을
취득한 많은 외국인들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외국인 숫자는 훨씬 더 많다. 수도인
베를린의 인구 3백50만 명 중 외국인이 약 50만 명이다.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살면서 문제가 없을 리 없다. 유럽사회는 대체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경우를 보면 안다. 한국에서 간 가난한 간호보조원이 독일 국민이
낸 세금으로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 그 나라 대학생들에게 강의까지 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까? 배타적인 우리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나는 독일에서 전통 있는 대학을 다녔지만, 대학교 동창회가 개최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독일과 우리나라 대학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는
제도적으로 자신의 모교에서 바로 교수가 될 수 없다. 독일에서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를 받고 수년간 연구 및 강의를 한 후 대학교수 자격증 (Habilitation)을 취득해야
한다. 그 후 다른 대학교에 교수로 간다. 다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후에는 자신의
모교에 교수로 갈 수도 있다.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운 내용을 그대로 자기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소위 학문의 근친상간을 막고,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발전을 추구하는
제도이다.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면 교수는커녕 강사도 되기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과는
너무 많이 다르다.
독일에도 물론 고향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행사가 많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수많은 사회적 모임과 단체 활동에선 출신학교나 출신지역으로 사람을 가르지 않는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취미나 가치관, 또는 개인적 성향에 따라 모임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다. 세계지도를 보라. 지도상에
남북으로 갈린 한국이 얼마나 작은지. 그 안에서 또 우리끼리, 끼리끼리로 편 가르고
쪼개면서 밀려오는 글로벌 파도에 대항 할 수 있겠는가?
예수를 믿고도 끼리끼리가 필요한 사람은 종교심은 있지만 하나님나라의 사람은 분명
아니다. 그는 제국의 사람이다.
금주의 묵상
마 5:8 아! 복 되어라 마음이 씻긴 사람들
그들은 허상에서 자유해 본질(영원)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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