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두 얼굴
한 3년 전인 것 같다. 헬프(the Help)라는 영화가 나와서 꽤 많은 아카데미상 후보 부문에
올랐고 호평을 받았다. 캐스린 스토킷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50살 된 흑인하녀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에이블린은 하인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하녀로 살며 17명의
백인아이를 길렀다. 정작 자기 자식은 돌보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잘 자라준 아들은 백인
주인의 냉혹한 무관심 탓에 사고로 죽는다. 그러나 사실 작품은 에이블린과 아들이 모두
다 사실은 죽어가는 삶이였음을 보여준다. 아들은 냉혹한 무관심에 비명횡사했지만,
에이블린은 존재하지 않는 듯 대하는 백인주인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작가 지망생인 스키터가하녀로 산다는 건 어떤 거예요?질문한다. 에이블린의
삶에 존재를 인정해 주는 첫 질문이었다. 망설이는 그녀를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설득해
입을 열게 하자 봇물이 터지듯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작품은 허위로 가득 찬 미시시피의
백인사회를 메스처럼 헤집으면서 결말을 맺는다. 에이블린이 말한다.내 삶이 어떤지
그 전에 누구도 물어주지 않았어.백인주인에게 그녀는 꼭 필요하고 그곳에 있지만
의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떤 갈등도 없이 주어진 역할대로 잘 흐르는 듯함 속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었다.
몇 년 전 한국에 가서 강남거리를 한 10분 걸었었다. 맨하탄의 5th Avenue는 그곳에
비하면 고급스럽지도 못하고 더 더러웠다. 별세계에나 온 듯이 명품들 가게나 즐비하고,
그 가게들의 고급스럼은 사람 기를 죽이는 폭력(?)이었다. 속으로 장식은 자연스럼과
편안함이 있어야지, 이건 또 무슨 컨셉인가 돼내었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그 10여분
동안 가난해 보이거나 서민(?)으로 보이는 사람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옷 잘
입고, 무언가 있는 듯 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거리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길은 아무리 화려해도 산 길은 될 수 없다. 죽은 길인 것이다. 잘
가린 사람만 나타날 수 있는 허상의 거리일 뿐이다. 보이지 않지만 폭력이 삶을 억눌러
버린 허깨비들의 터일 뿐이다.
중앙일보에서 읽은 칼럼이다. LA중앙일보 사회부차장이 병원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적었다. 병원 대기실에 아이들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앉았던 좀 연세가 드신 분이어느
교회 다니세요?라고 물었다. 어느 종교냐, 종교가 있느냐가 아니다.
캄캄한 자아 독선적 질문이다. 그래서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대뜸교회 안 나가면 지옥 갑니다.로부터 시작하여 훈계, 경고, 협박성이 가득한
말을 쉴새 없이 쏟아 붓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난감하고 불쾌했던 일을 적은
것이었다. 그 칼럼은 병원에서 나오는데 그 차장님의 아이들이 아빠에게아빠, 지옥이
뭐야? 왜 아빠가 지옥에 가야 돼?라고 물은 질문으로 마감하고 있다.
내가 옳다면 또는 맞는 답을 가지고 있다면 너의 존재의 권리까지 무시할 수 있는 이
폭력과 십자가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시대의 폭력에 존재 가치조차도 잃어버린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어 주셨던 그분, 원수도 사랑하라 하신 그분,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기도하셨던 나사렛 예수는 정말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분이실까?
암세포의 특징은 자아중심성이다. 주변의 영양을 혼자 독차지 한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신의 자리가 아닌 영역도 마구 침입해 들어간다. 주변의
모든 정상세포들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심지어 영양을 더 많이 빼앗아오려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 자신에게 연결시키기까지 한다. 표현 그대로 암적인 존재이다. 암세포는
오직 폭력뿐너는 없는 존재이다. 혹 암세포가 자신이 더 능력 있고, 어떻게 해야 더
오래 강하게 살 수 있는지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오늘 기독교의 전도와 선교가 우려되는 건 나 만의 염려는 아닐 것이다.
사는 게 죄고, 설교하는 게 죄다. 주여 이 죄인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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