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할 것 없이 인생을 허무하다고 합니다.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데 왜 허무할까요? 실제를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삶을 내 생각 속에서 내 에고를 중심으로 조작하여 내게 편하게 맞춘 허상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귀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거짓에 저항하고 진실을 가꾸는)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 피어나는 만큼 생명은 귀하고 아름다워집니다(허무가 스러집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 열리고(에고의 껍질이 깨어져) 자라나는 길은 말씀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말씀)을 사모하라. 너희의 거듭난 것은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십니다. 말씀이 감추어지고 교리-설교뿐인 시대, 생명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말씀을 만날지, 즉 아버지의 사랑의 음성(아픈 실제)을 들을지 서로 나누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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