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29-34절은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유명한 증거문이다. 이
증거문에는 세 가지의 역설(paradox)이 나타난다.
첫째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29, 34절) 세상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둘째로 내 뒤에 오시는 그 분이 바로 나보다 앞서신 분이다. (30절)
셋째로 나도 그를 알지 못하나 내가 그를 나타내려 한다. (31절)
이 세가지 역설적 증거의 주인공을 33절은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성령이 머무는 삶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가장 참혹한 고통과 가장 수치스러운 모멸 속에서도 자신을 부인하고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드리는 모습이다. 자기의 감정, 판단, 뜻 의가 중요해지면 성령님은 머무실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옳고 중요해도 나는 제한적이므로 자원함으로 나를 내어드린다. 이 역설을 만나고 산
바울은 이제 내 속에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주인됨)이라
따라서 죽는 것도 유익이라고 고백한다.
성령이 머무르는 사람이란 자신의 살아있음(삶)을 통하여 자신을 타나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나타낸다.
생명은 자기를 다하여 자기를 포기하므로 가치를 창조하는 역설이다.
p.s. 이 역설이 나타나지 않으면 종교입니다 : not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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