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보다 높은 하늘에서 우는 종달새의 울음소리만이 봄의 노래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논두렁에 숨어서 지하(地下)의 소리로 노래하는 뜸북새의 소리도 봄의 노래를 만듭니다.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聖 텔레시아스는 시력을 잃은 장님이기에 더 깊은 진실을 깨달았으며, 바그너는 베토벤이 청각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환상의 꿈은 메마른 사막위에서 피어났지, 수목과 기화요초의 정원에서 일구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사실의 전개(展開)인 역사만으로는 살 수 없다. 꿈의 전개(展開)인 신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죄된 모습만을 바라보면 우리는 정신 파산에 이른다. 인간에게 꿈의 모습만을 덧입히면 무책임한 사회파탄에 이른다. 양쪽이 모두 필요하다.
하늘에 계신 주님도 중요하다.
그러나 나 자신조차도 모르는 내 중심을 품어안은 또 하나의 나 되어 주신 신랑주님 없이는, 신앙은 메마른 머리의 또 하나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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