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도 료마 (板本龍馬)
사카모도 료마는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일본인들 중에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런 위치이면서도 그의 일생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는 33세 나이에 암살당함으로 짧은 일생을 마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1835년 하급 사무라이의 아들로 태어나, 열네 살부터 검술을 익혀 검술가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저항하여 새롭게 일본을 건설하는 운동에 투신하였다.
젊은 나이에 그는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려면 서양의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스승 가스 이슈의 뜻에 공감하여 무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운무역회사를 설립하였다. 훗날 이 해운회사가 일본 해군으로 바뀌어 체제를 변혁시키는 데에 획기적인 몫을 감당하게 되었다.
1866년 그는 서로 원수같이 지냈던 조슈아 번과 사쓰마 번을 신 일본 건설의 큰 명분아래 화해시키고 동맹을 맺어 그 세력을 바탕으로 1866년 무혈혁명 으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켰다. 명치유신이란 일본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룸으로 그 때까지 뒤지던 한국을 앞지르게 되며 역사의 새 장을 연 인물이다.
그가 여전히 존경받으며 일본인 의식 중심이 된 것은 다음 3가지의 이유이다.
1. 선견지명 : 역사의 앞을 보고 새 시대를 열었다. 2. 선공후사 : 명치유신 성공 후에 모든 자리는 혁명동지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뜻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3. 독파용기 : 그의 비전을 관철하기까지 그는 끝없는 모함, 방해, 불평 분자들에게 시달렸지만 타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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