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년은 되어야 : 노력의 허상 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 성 프란시스의 모습을 한 제자가 보았다. 그의 미숙한 눈에도 새들은 성자의 이야기를 분명 이해하고 있었 으며 성자와 자연 사이에는 막힘없는 교류가 있었다.
스승이 돌아서자 그는 다급하게 다가가서 물었다. 얼마나 수도해야 나도 새들에게 설교 할 만큼 영성이 깊고 맑아집니까? 내키지 않았으나 스승은 "글쎄, 한 십년 ... " 라고 대답했다.
제자는 실망어린 얼굴로 "그렇게나 길게요 ..." 하더니 "열심히 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하고 다그쳐 물었다. 열심히 라는 말 속에 다른 사람은 십년 걸려도 나는 빨리 할 수 있다는 자만이 가득하였다.
스승은 "내가 잘못 생각했어. 한 이십년 걸리겠구먼" 했다. 제자는 "아니 열심히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다니 말도 안돼요!" 하고 울상이 되어 부르짖었다. "가만, 내 자세히 생각해보니 오십년은 되어야 충분하겠어." 스승히 덤덤히 대답하고 떠나갔다.
노력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에고(ego)가 들어있지요. 노력은 생존의 거짓 의를 만듭니다. 그러나 생명피어남은 모릅니다. 생명의 사람은 노력하는 자보다 더 헌신적입니다. 그럼에도 더불어 누리며 기쁨으로 피어나 만물과 하나임을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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