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참 자신(I am)을 사는 사람들2018-01-25 23:23
Name Level 10

참 자신(I am)을 사는 사람들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8복의 결론을 주님께서는 핍박으로 맺으셨다. 뿐만 아니라 다른 복과는 달리 긴(2절)


설명까지도 덧붙이셨다. 다시 말하면(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지만) 앞의 7가지 복이


있는 사람은 박해 받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앞의 7가지의 존재방식은 제국의 방식과 완전히 대립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에게서 제국은 위협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사람들은 제국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제국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에 대한 거부(denounce) 또는 저항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에 의인이


핍박을 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 복이 모든 복의 결론 또는 완성인 것이


분명하지만, 또 하나의 내적 이유도 있다.


핍박(심지어 순교까지)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핍박 또는


순교를 허락하시는 경우는 두말 할 것도 없이 감당할만한 성도에게만 허락하신다.


그러한 사람은 이미 진리로 자유하며 자신됨에 충만하여 몰아(沒我)적인 사랑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이 죽음, 시련, 고통을 이미 넘어서 있는 사람이다.


자! 여기에서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인데 세상제국에서 전혀 핍박이 없다는 것이다. 핍박의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면 세상에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핍박은


커녕 갈등도 없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지 않고 종교를 믿기


때문이다. 제국은 종교를 핍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종교는 제국의 필요이다. 종교와


하나님나라를 사는 삶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종교 :


1. 어떤 원리의 체계(대개 교리라고 부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체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한다.


2. 인위적인 조직과 체계를 반드시 필요로 하며(부정적인 뜻만은 아님) 따라서 통제가


불가분 따라오므로 계급화, 권력화를 피하기가 어렵다.


3. 결과적으로 맞고 틀리고의 선악과가 불가분 중요해지고, 무의식적인 사이에


선악과가 모든 것의 뿌리가 되는 결정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따라서 아래 3가지의


결정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다.


4. 첫째는 원리체계를 내가 이해하고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이기 때문에 나의


중심성을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5. 둘째는 나중심을 가지고 원리체계를 따르니 믿는것 과 사는것의 차이(gap)를


피할 수 없다. 결국 마음으로는 믿고 삶은 다르게 살 수밖에 없는 이원론적 삶을 피할


수 없다.


6. 세 번째는 마음과 삶이 분리되면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능력은 몸과 마음이


일치될 때에 생수의 강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분리되면 내 의식(머리)으로 몸을


움직여가야 하기 때문에 항상 피곤하며 무엇보다도 권태로워진다.


하나님나라의 삶 :


1. 삶은 생명이 피어나는 것으로 원리적이지만 원리에 가두거나 제한되지 않으며 제한


될 수도 없다.


2. 생명은 내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들려 하면 원수가 되고, 선물로 누리면 기쁨이 열매 맺는다.


3. 생명은 기쁨으로 누리고 열매 맺기 때문에 반드시 나누게 된다. 기쁨을 나눌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나눔을 안하려고 하는 것이 더


불가능한 것과 같다.


4. 나누는 가슴에는 자비와 긍휼이 점점 자라간다. 닫혀진 가슴에는 불안과 욕망이


커진다. 성령의 열매는 종교적 노력이 아니라 나눔의 삶에 절로 피어나는 열매다.


5. 생명은 자비와 긍휼이 자라감으로 모든 다름을 그 모습대로 수용하고 품으며,결코


정죄(롬 8:1)가 없다. 원수도 사랑하는 것은 생명의 당연한 속성이다. 나무가 햇볕도


무서리와 폭풍도 품는 것과 같다.


6. 그 결과는 하나됨이다. 이 하나됨은 조직이나 체계적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무질서해 보인다, 현상적으로. 그러나 본질 속에는 일치된 원리가 흐르고 나누어진다.


마치 자연의 모습과 같다. 또 물의 흐름과 같다.


7. 그것을 더불어살기(life-together)라 한다. 이것이 생명의 삶이며, 조직과 체계로


통제되는 생명의 삶에 반하는 것으로 생존이라 부른다. 생존 안에 우리는 단절되어


외로움 속에서 불안을 중심에 품고 근심 속에 스러지며, 생명 안에서 우리는 만유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유를 가장 아름답게 피우는 섬김(진정한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신구약 모두에 하나님의 백성의 특징은 핍박으로 나타나 있고, 우리가 따르는 주님은


십자가의 주님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라면 핍박을 받는 것이 삶의


목표(일부러 받는 것이 아니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주의 묵상


마 5:10 아, 복되어라!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여


저들은 분명 하나님나라를 사는 사람들이다.


11 나로 인하여 핍박 받고, 거짓과 악한 말을 받을 때


너희는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나님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받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