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 : 벌거벗은 만남으로
우주선이 태양계를 지나 갤럭시의 끝을 향해 날고 있고, 천체물리학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우주의 비밀을 속속들이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세 세계로 들어가 이제껏 우리가 알아
왔던 모든 물리법칙이 깨어짐에도 물리세계는 여전히 그대로 운행되고 있는 헷갈림에
어지럼증도 느낀다. 어쨌든 상상할 수 없었던 광활한 지식이 손가락만 까딱거리면 펼쳐지고,
무한 양의 지식이 동전보다 작은 컴퓨터 셀 큐브 속에 들어가 있다.
그 시대의 우리는 몹시도 바쁘다. 지식의 전량을 종합한 밀도 짙은 농축 우라늄의 시대를
따라 가는 물결 속에 모두가 정신이 없다. 열심히들 살고 있고 미친 듯이 뛰어 다닌다. 이
행사에서 저 행사로, 이 모임에서 저 모임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이
이론에서 또 다른 이론으로 분주해서 숨이 차고, 피곤하고 지쳐서 골머리가 쑤시고 아파서
쓰러져 텅 빈 천정을 쳐다보고 허탈해져 있다. 실소속에서 자신을 묻어버린 체 차라리
무관심으로 무기력해져 있다.
인간은 육체에 담겨 있지만 본질은 의식(영)이다. 먹고 마시고가 필요하지만 떡으로만 살
수는 없다. 생존은 절대 필수이지만 생명의 존엄성은 생존의 크기나 위치에서 오지 않는다.
생명의 존엄성은 전적으로 관계에서 온다. 당신(thou)에게 나됨(I am) 그대로 존중받고 나로
자유할 때에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어날 뿐이다, 누리는
자에게서. 이 존엄성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고 능력이기 때문에 존재의 영광이 피어나게 한다.
이 모든 관계의 뿌리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그 무조건적 사랑에 밀착되면서 우리의
헛된 수치, 두려움, 욕망이 스러진다. 눈이 뜨인다. 봄이 열린다. 새 차원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 예배, 묵상, 봉사, 선교, 교육, 훈련은 이 관계의 회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관계는 희미해진 체 나의 행위에만 사로잡혀 버렸다. 주님의 임재는 느끼지 못하면서 무엇을
하므로 결과를 얻어내려는 신율법주의 기복주의가 심령들을 너무도 메마르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는 어떤 종교성으로 치장된 굿판도 영험이 없다. 가짜인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온갖 기독교행사들은 어쩔 수 없이 본질에서의 거리감이 너무 멀고, 무언가 썩은
냄새가 피어나고 있고, 시체에 화장하는 듯 한 회칠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평면이 아무리 합해져도 입체가 못되고, 자연시간의 길이를 아무리 연장해도 영원이 못되며,
양을 아무리 합해도 질로 비약을 할 수 없듯이, 정신의 극한을 다 해도 종교의 성실을 하늘
끝까지 높이 올려도, 새 생명, 예수 안에서의 성령으로 새롭게 되는, 새 것이 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어떤 행위로도 안 되던 차원의 비약과 통합이 존재의 연합에
들어있다. 생명이 하나 되면 1+1 이 2가 아니라 천도, 만도, 억도 되는 생명신비가 피어난다.
이제는 나아갈 시간이다. 내가 덮어쓰고 있던 성경지식, 교리지식, 종교행위, 교회연륜, 불신,
절망 등 모든 껍질을 내려놓고나의 진실 안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가리고 있었던 불쌍한 나,
외로운 나, 무기력한 나, 척하던 나가 오직 나를 부르시는 그 부르심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다.
모든 말이 막힌 자리, 단 한 가지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한 마디로
나아갈 시간이다.
십자가에 벌거벗은 주님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뒤집어쓰고 있던 나이다. 제사장 나,
바리새인 나, 서기관 나, 사두개인 나, 의로운 나를 내려놓고 벌거벗은 가련함으로 나아갈
때이다. 오직 주님의 자비와 긍휼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시간이다. 처음으로 가짜의 가면을
벗고 나의 진실을 토해낼 시간이다. 내가 버린 나를 내가 거두어 주님 앞에 나아갈 시간이다.
이제는 만나야 한다. 거짓의 홍수 속에서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생각 하나 조차도 진실이
없었던 텅 빈 나를 만나야 한다. 아프지만 직시해야 한다. 그 허무한 나 속에서 아직도 유일한
진실로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꿈을 꾸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 나의 진정한 뿌리를
만나야 한다. 주님 앞에서 내가 나일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해야 한다. 큰 것도, 작은 것도, 잘난
것도, 못한 것도, 위대한 것과 초라한 것이 따로 없이 나는 나로 빛나기 시작하는 신비를
보아야 한다. 아! 그분의 품에 안기는 순간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 같던 상처, 한, 분노,
절망이 스러지는 그 희한함을 느껴야 한다. 이 만남이 없는 삶에는 침체만 깊어진다, 겉으로
화려함을 덮어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시간, 알이 부화 되어 병아리가 되는 시간, 해바라기가 태양을 머금어
무르익는 시간으로 나아오라! 갤러시와 양자역학이 어지러운 시대에, 현상의 현란함에 더
이상 시달리지 말고 존재의 뿌리에서 하나임을 체험하는 본질의 시간으로 나아오라.
이 시간은 2015년을 생명의 복된 열매로 알알이 채우시는 주님의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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