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됨을 향한 첫 발걸음
종교적 신앙은 교리적 또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는 모릅니다. 그래서 열심을
내게 되면 종교적 의식을 많이 또는 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의식일 뿐 실제는
아닙니다. 생명 실제를 사는 것이 아니니 실제의 열매나 변화는 없습니다. 결국은
믿어봐야 소용없다는 무기력과 함께 종교와 삶이 분리된 위선자(바리새인)가 됩니다.
생명의 실제는 두 가지를 통하여 살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눔입니다. 생명은 나눔으로만
살아지고, 나누어지지 않는 것은 산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게 부부가 함께 있어도
나누어지지 않았다면 함께 살았다 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았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나누어 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눔은 통(通)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통함이 없이 나눔은 이루어질 수도, 또 나누어졌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통함은 인격적입니다. 즉, 물리적 오고감이 아니라 주고받는 사이에 감동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말은 통(通)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거짓은 진정한
감동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실제를 사는 길은, 그러므로 진실된 나눔의 교통을 통하여서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코이노니아에서 첫째로, 나됨(I am)이 자라납니다.
거짓을 넘어선 진실된 나눔에서 비로소 나는 나 일 수 있으며, 내가 나로 용납 받고 나눌
때에 나는 장성하여져 갑니다. 둘째로, 오병이어의 역사를 누립니다. 생명은 1+1=2가
아닙니다. 생명의 1+1은 1도 되고 1억도 됩니다. 필요와 꿈을 따라 그 열매가 달라지는
것이 생명일치의 신비입니다. 바로 이것이 생명실제를 누리는 것이고 유업자된 생명을
피우는 것입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코이노니아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두 가지가 결단되고
실천될 때에 침노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생존의 마지막 경계를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생존의 마지막 보루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과 그 자신의 터전인 가족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당연한 절대명제입니다. 그러나 천국(생명세계)에서 는 부모,
자식, 형제가 없습니다. 부모, 처자, 형제가 절대적이면 아직 생존세계의 한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라고 하십니다. 또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남으로 출발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존세계 속에서 부모, 처자, 형제 사랑은 욕심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부모 자식을 놓았을 때에, 즉 진정한 자유 안에서 나눌
때가 참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과의 교통의 기본자세는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오직 희생(sacrifice)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
(십자가)으로 오셨으며, 그 희생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또한 우리의 희생 밖에는 없습니다. 그
희생의 출발이 십일조와 봉헌물입니다. 돈을 섬기는 사람 즉, 중심가치가 돈인 사람은 결코
온전한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즉, 코이노니아에 들어가려면 생존의 경계를
넘고자 하는 결단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본적 희생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육체로 3차원 물질세계를 사는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훈련된 소수가 전적인 기도를
통해(사도행전처럼) 통함이 이루어졌을 때에 그 생명역사를 본 사람들의 참여는 훨씬
쉽습니다(사도행전처럼). 우리 하나임교회는 이 단계에 도착했습니다. 즉, 소수의 헌신된
성도들의 사도행전적 코이노니아의 출발을 구할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사랑방
자원을 3그룹으로 분류하여 받습니다.
Ÿ 코이노니아 그룹 : 매주 가정모임
위의 두 가지를 실천하며, 주일예배, 삼일예배와 새벽기도회 1일 이상을 참석하며
그 기본자세 위에 생명누림을 허락받기를 구하는 성도들
Ÿ 사랑방 그룹 : 월 1회 이상 가정모임
십자가의 생명을 누리기를 중심의 진실함으로 바라기에, 두 가지의 기본이 이루어
지기를 구하며, 먼저 주일예배와 삼일예배는 드리는 성도들
Ÿ 친교 그룹 : 교회 친교시간의 모임
아직은 더 자라기를 구하며, 현재로써는 주일예배 참석을 통해 생명세계를 더 알고
배워가고자 하는 성도들
위의 그룹들은 개인의 성취나 자격의 구분이 아닙니다. 그냥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정도를
따라 개개인도 교회도 각각 자기의 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자라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랑도, 수치도 어떤 평가도 아닙니다. 사회 안에 대학생도, 중고생도, 초등학생도 있듯이,
영적 경륜을 따라 각각의 자리가 있을 뿐입니다. 또한 사랑방 편성에서만 구분할 뿐이지
나머지 모든 것에서는 어떤 구분도 없습니다. 주일예배, 삼일예배, 새벽기도회, 각종 훈련,
C-Light Zone, 세미나, 수련회, 특별집회 등 그 무엇에도 구분이 없습니다.
종교조직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우리의 몸부림이요 기도입니다. 나가
아니라 우리 를 위해 기도하십시다. 먼저 나아가는 성도들이 잠시 있지만 우리 모두가
다함께 나아가기 원함을 기억하며 기도하십시다. 영적 인도자인 저의 사명은 한 분도
남김없이 생명통함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며, 성도님들의 분별은 각각 자신의 단계를 따라
인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존의 허무를 넘어 생명부요로 다함께 나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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