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able : 모두가 모르는 척하는 것
오늘 목회서신은 카프카의 일기 중 한 부분을 나누는 것으로 열겠습니다.
내 생각에 사람들이 책을 읽는다면 사람들을 물어뜯고 콱 찌르는 그런 책만
읽어야 할거야
만약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의 두개골을 주먹질로 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는가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서?
맙소사 !
책이 없으면 우리가 행복해지기 오히려 쉽지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책은 아쉬우면 우리가 써버리면 되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로하는 책은 우리를 아주 고통스럽게하는 불행처럼
우리를 쪼개고 피할 수 없이 파고드는 책이지
마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이의 죽음처럼
마치 우리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내쫓겨 멀리 숲으로 추방된 것처럼
마치 죽음과 같은 아픔 말일세 !
책은 우리 내면안의 얼어붙는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해
책은 어떤 진실을 전하려는 안타까운 몸짓이다.
그런 책의 진실은 감추어지고, 판매부수로만 평가되는 시대에 카프카의 말은 깨어지지
않는 두꺼운 얼음을 찍은 도끼의 전율처럼 울려온다.
설교가 무엇인가 ?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이라는 명제는 그래도 아직 부인치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판매부수와 매상(?)으로만 측정되는 기형의 시대에 우리는 모
두 괴물이 되어있다.
설교가 엔터테인먼트가 된 것은 이미 오래이며, 그 결과로 우리는 무의식중에 내가 듣기
를 즐기는 설교 또는 편한 설교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대중이 듣기를 좋아하고 즐
기는 설교가 잘 하는(?) 설교가 되어버렸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카프카의 말처
럼 심령을 쪼개고 두개골을 쳐깨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편안한 즐김이되고 말았다.
그러면 왜 책이나 설교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과 아픈 도전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우리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프지만 우리 모두가 가짜이다. 수많은
사회 심리학 실험들이 보여주는 것처럼(지난 주 설교에서 나눈 실험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진실이라고 하느냐이다. 우리는 심심치않게 불의나
부패가 드러나면 꽤 흥분을 한다. 마치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그러나 불편
하지만 진실은 그러한 거짓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함께 거짓을 담는 삶의 그
물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나는 그 거짓의 일부이며 공범자라는 사실이다. 그러
므로 개혁은 일부 곪은 것을 도려내거나, 체제를 바꾸는 것으로 될 수 없다. 도려냄과
바꿈 자체가 거짓을 또 내포하기 때문이다. 마치 암수술을 하는 메스에 암세포가 붙어
있어서 수술한 그 자리가 암의 모판이 되는 격이다.
진정한 개혁은 사건이나 체제 이 전에, 각자의 거짓을 먼저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아픈
성찰과 고침이 없이는 가능 할 수 없다. 책이든 설교이든 그 시대를 향한 진실의 메세지
라면, 카프카가 외치는 그 외침을 부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가짜이다. 아니 내가 가짜이다. 이 성찰없이 영성의 삶, 즉 진실을 향함은 일어
나지 않는다. 이 성찰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라는 교리적 인정으로 대체되어, 다 죄인이
니 나만 특별히 더 죄인도 아니고 괜찮다는 종교적 정당화가 되어 이 세상의 거짓
중의 거짓의 보루가 종교가 되어있다. 교회가 사회라면 용납될 수 없는 부정과 부패를
교회 안에 버젓이 존재시키며, 그것을 지탄하는 사람들을 너도 깨끗지 못하면서 누구를
탓하느냐 식의 거짓의 본질은 감추어진 체 (untouchable) 처리 방식을 가지고 장난(?)
이나 칠 수 있는 이유이다. 그 이유는 거짓자체를 건드리면 우리 모두가 불편해지기 때
문에 종교라는 껍질로 가리우고 눈감고 아웅만하고 있다.
새로워지기를 원하지 않고 적당선에서 덕스럽게 처리되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의 신앙에서. 진정 새롭게되기를 찾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적당 선에서 구원받았다
고, 좋은 신앙이라고, 훌륭하다고, 헌신적이라고 인정 받기를 원합니다. 그 적당히 편한
자리를 찾아 유목민처럼 떼지어 이동도 합니다.
예수님에게 믿음의 삶은 영과 진리의 예배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영과 진리를 구하여 하
나님께 나아가는(나아감=예배) 삶입니다. 인간은 우리끼리 만든 육과 거짓에 거하기를
좋아하고 정당화하고 찬미까지 합니다. 안톤체호프는 아이를 낳으면 때리면서라도 써
지마, 써서는 안돼!라고 가르치라고 했다. 모든 것이 거짓인 시대에 진실을 외치는 아
픔과 절망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을 구하는 자도 없고 전할 수도 없어서 언제나 광야에서 울리는
소리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