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울림과 어울림2018-01-25 23:50
Name Level 10

울림과 어울림 

 

깊은 영성은 여백에 있다. 여백은 비움이다. 예수님의 영성은 여백의 영성이요,
비움의 영성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빌 2:7).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신 후에 그 빈자리는 은혜와 진리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
졌다(요 1:14). 비움은 텅 빈 충만이다. 비움이 텅 빈 충만이 되는 것은 비움
속에 무한한 꿈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득 찬 그릇보다 귀한 것이 텅 빈 충
만인 것은 비움 속에 무엇이든지 넘칠 수 있는 우주의 자궁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가득 찬 그릇에는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다. 이미 가득한 그릇은 변화의
가능성도, 성장의 가능성도 없다. 그런 까닭에 가득 찬 그릇보다 텅 빈 그릇이
아름답고, 꿈과 노래를 불러 일으킨다.


노자는 "항아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도공이 빚는 흙이 아니라 항아리 안의
빈 공간이다"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그릇이 되는 것도 자신을 비
울 때이다. 쓰레기 덩어리와 같은 탐욕과 이기심을 비워야 한다. 미움과 질투
와 시기를 비워야 한다. 헛된 욕망과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때 우리는 성결한
가능성을 품은 주님의 그릇이 된다.


여백은 아름답다. 동양화의 아름다움은 여백에 있다. 여백은 여유를 준다. 여백
은 안식을 준다. 여백은 평강을 준다. 음악의 아름다움도 여백에 있다. 음악의
여백은 쉼표다. 음악의 감미로움은 쉬표에 있다. 쉼표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백이다. 쉼표는 끝이요, 시작이다. 쉼표는 음악과 음악을 연결시키는 다리다.


여백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가슴 아픈 소리를 내는 피리는 속이 비
어 있다. 피리의 애절한 소리는 텅 빈 여백에서 나온다. 비움이 있기에 울림이
있고 울림이 있기에 어울려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참된 사랑은 여백에서 나온다. 깊은 친밀감은 여백에서 나온다. 늘 함께 있다
고 친밀한 게 아니다. 지나친 친밀함은 친밀감의 적이다. 참된 친밀감이란 여
백 속에 품어져 함께 어울림을 허용하여 하나됨을 피운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함께 있음을 갈망하고, 함께 있을 때 홀로 있음을 갈망한다.


인류 역사는 십자가의 여백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의 여백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는 아픔의 현장이 십자가였다. 그러
나 십자가의 여백은 모두를 초청하여 그 안에서 함께 울려, 어울리게 하였다.


감사는 어울림의 열매이다. 여백에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됨으로 울려 승화된
삶의 열매이다. 감사가 피어난다는 것은 무언가와 어울림이 일어난 것이다.
생명은 울림이고 그 생명의 누림은 어울림이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는 천국의
실체요, 우리 존재의 본향이자 돌아갈 자리요, 나를 나로 영원히 울리게 하는
가슴의 사랑이다. 감사의 계절에 우리의 가슴마다 어울림이 일어나 나된 울림
의 감격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