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서신

Title광야의 순례를 초청하며2018-01-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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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순례를 초청하며


성경의 영성은 통(通)함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본질에서 출발된다.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3분의 하나님이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계신다. 즉, 온전한 교통이


세분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 이 통함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사랑이 추상적 명사요 또한 너무 많이 남용되어서 그 본래의 뜻을 느끼기 힘든 반면에,


통함은 동사적이고 역동적이어서 성경의 영성 표현에 훨씬 더 적합해 보인다.


여기에서 통함은 그냥 물리적 움직임이 아니라 인격적 열림과 수용이다. 너는 너로서


내게 조건 없이 수용되고 환영되며, 나는 나로서 너에게 망설임 없이 침투된 하나 됨이다.


나타날 때에는 너와 내가 없이 하나로 나타나지만 나의 나 됨과 너의 너 됨이 말살되지


않은 주님의 기도에서 가르쳐 주시는우리됨이다.


여기서 벌써 우리는 성경의 영성이 생명의 영성임을 눈치 채게 된다. 생명은 그 본성상


통하고 하나가 된다. 노력이 아니고 생명 자체가 그러하다. 즉, 통하고 하나 되는 것이


생명이다. 만약 통하지 않고 하나가 아니라면 아무리 성경적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도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는 되지만 성경의 영성은


아니다. 즉, 생명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기독교회사와 하나님과의 갈등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냥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모두 하나 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 되면 강해진다. 진정으로 나와


함께 느끼고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의 능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 즉 인격과 생명으로 하나 된다면 혁명도 일으킬만한 능력이 되는 것이다.


120문도가 3세기 안에 로마를 뒤엎을 수 있는 능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길과 자리를 버리고 하나 되는 것을 죽음으로 여기기에 모든 열심과 노력을 해도,


그것만은 피한다. 결국 이스라엘 2천년 역사도 종교를 세웠고, 기독교 2천년도 종교를


세웠다. 둘 다 종교적 역사를 이루었다. 강력한 집단이 되었고, 그 위세가 결코 폄하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의 본질은 새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 생존의 세계에 거짓본성에


억눌려 참된 사랑과 자유와 창조성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생명으로거듭나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나눌 수 있는 자리까지 주님께서 인도하셨다. 우리 앞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선택의 기로에 놓여졌다. 종교를 넘어서 생명의 코이노니아로 광야의 순례로


나아가실 성도님들은 일단 함께 모여서 같이 나누고 기도하십시다. 성령님의 인도가


아니면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성도님들은


3월 1일(주) 오후 3시에 예배실에서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