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카스트렌시스와 초월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사상가이다. 이미 몇 번
소개를 한 이유도 그래서이다. 20세에 토인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5세에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30세에 가톨릭대학교의 부총장이 된 천재적 사상가이다. 그의 평생은
모험적이고 도전적이고 그래서 고달픈 삶이었다. 외교상 기피인물이 되고 쇠사슬로 린치를
당하고, 총격을 받고, 신부로서의 특권과 지위를 포기한 삶으로 그는 사상과 삶이 일치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하나님나라를 알고 산 사람이다.
그는 현대인을 편안한 아파트에 자신을 가둔채 필요한 상품을 배달시키며 보안시스템의
안전 속에 사는호모 카스트렌시스(수용되는 인간)라 부른다. 고치 같은 full-service 아파트에
갇혀 진정한 정주(定住)의 기술을 잃어버렸다. 의료기술과 약에 의지하여 고통을 견디는
삶의 저항력을 상실하여 아프면 병원의 꼭두각시가 된다. 학교에 의지하여 자발적 배움과
진정한 앎의 호기심을 상실한 채 성적의 평가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화시켜버렸다. 웰빙
테크놀러지에 기대어 죽음을 맞이하는 기술과 마침의 미(美)를 잃어버렸다.
일리치에 의하면 소비사회에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노예가 생긴다. 하나는 소유(상품,
성공, 경력, 외모 등) 중독이고, 또 하나는 못 가진 시기심 중독이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류가 가장 무기력한 인간들로 전락한 것은 너무 쓸모 있는 물건을 많이 만들므로 너무
쓸모없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집은 더 이상 가족들의 삶을 그날그날 엮어가는 곳이
아니다. 내 손으로 내 집을 고치고 가꿀 줄도 모른다. 집은 밤새 노동력을 보관해 두는
수납창고이다. 또한 사회를 향한 과시의 도구이다. 그래서 허름하거나 부족해서는 안 된다.
그럴 듯해야 하므로 인테리어와 개조에 쓰는 돈을 버는 데에 사력을 바친다. 집이 자신들을
위한 것인데 자신들이 집을 위해 쓰여지고 있는 비극적 역설을 깨닫지도 못한다. 그저 삶은
더 괜찮게 보여야 되는 게임일 뿐이다. 게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승자독식이다. 1등이
전부이다. 2등부터는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다.
쉽게 말하면 빈익빈부익부가 점점 더 심해진다. 지난해 포브스 발표를 보면 400대 부자들의
순자산 규모는 불황에도 1년 전보다 3000억 달러가 늘어난 2조 2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순위에 변동이 있을 뿐 400대 명단에 새로 진입한 부자는 찾기 힘들다.
빈익빈부익부는 계속되고 있다. UC버클리 연구팀이 국세청(IRS) 소득세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이 지난 100년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의 가계소득이 전체 가계소득의 19.3%를 차지해 이전 최고치였던 1927년의 18.7%를
앞섰다. 더욱이 상위 1%의 지난해 소득은 20% 늘어난 반면 나머지 99%는 1% 증가에
그쳤다.
승자독식은 로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상금의 대부분은 1등에게 집중된다. 한 케이스를
예를 들면 메가밀리언스 당첨금액은 1등이 1억 1900만달러였지만, 2등은 10만 5203달러에
불가했다. 1억 1900만달러는 10명 또는 100명이 나눠도 큰 금액이지만 로토 판매수입을
극대화하려면 1등이 독식하는 방식이 유리하다고 한다. 초대 재무부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도 로토를 발매하면서높은 확률의 작은 당첨금보다 낮은 확률의 큰 당첨금이 더
좋다고 말했다.
승자독식은 불황기일수록 심화된다. 경제가 악화되면 승패의 대결구도가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승자인 부자들은불황 속 호황을 구가하지만 가난한 패자들의 삶은 각박해진다.
호모 가스트렌시스도 승자독식도 모두가 게임의 절대화된 모습의 결과이다. 게임은
치열하게 하되 끝에 이기고 진 것은 게임의 승패로 즐기며 끝내고, 결과는 같이 나누는
자유를 끝끝내 불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인간은 게임보다 위대하고 초월적임을 나는 믿는다.
게임도 즐기고 결과는 더 높은 차원에서 즐기는 하나님나라를 나는 바라보며 오늘도 핍박(?)
속에서 말씀을 증거한다. 하나님나라를 알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을
나는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