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림에서 날개 폄으로
아기는 생후 8개월이 되면 특유의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소아과 의사들은 그것을
<제9개월의 불안>이라고 부른다. 엄마가 자기 곁을 떠날 때마다 아기는 엄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죽었다고 믿는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심한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 나이에 아기는 세상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기의 애도>는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음을
의식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기는 한 몸 같은 결합을 단념하고 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기와 엄마는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기는 혼자 있게 될 수도 있고, 엄마 아닌 낯선 사람들 아기에겐 엄마 아닌 모든 사람,
경우에 따라서는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낯선 사람일 수 있다 과 관계를
맺어야 할 때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이 때가 아이는 전지전능의 단계에서 깨어나 온
세계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것도 또 자기와 일체인 것도 아님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기는 생후 18개월이 지나서야 엄마와 일시적인 이별을 일반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기의 의식을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무의식에서는 엄마를 내가 원하는 대로 붙들어 놓아야 한다는 강박이 심해지는 것이다.
이 강박은 우리 평생의 불안의 뿌리가 된다. 고독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 낯선 사람이나 일을 마주치는 공포 등의 무의식의 강박이 뿌리가 되어
매달림(cling)이 일어난다. 이 매달림 속에는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는 전지전능의 허망한
꿈이 들어 있다.
이 매달림의 일반적인 면은 돈과 이익에 매달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전도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면은 가족, 친구 등이 항상 나의 통제(control) 상태 안에 있어야 된다는
강박이다. 첫째가 우리의 존재를 파괴시키는 핵이라면, 둘째는 우리의 관계를
불건강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 두 가지의 매달림은 삶에서 사회가치(세상의 규정한
가치체계)를 절대화시킨다.
그런데 사회가치는 외향적 이상향이다. 즉, 잘생긴 외모에 일류학력과 경력 등등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매달림의 인생은 자기변명과 과시 이
두 가지에 집착한다. 자기불행의 모든 탓은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이고, 모든 것은
과시를 위해하므로사람에게 보이려고(마 6:1) 한다. 창세기 3장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후에 어떻게 현상의 이상향에 속아 자신은 부끄러워하고, 이웃은 정죄하고,
하나님은 무서워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삶은 진정한 자신은 늘 억눌러야 한다. 그러므로 가슴은 얼어 붙어
있고 머리로만 살게 된다. 머리의 특징은 작다는 것이다. 눈앞의 자기 이익 밖에 보지 못해
독수리의 기상을 잃고 눈앞에 먹이 밖에 보지 못하는 닭이 되어 산다. 닭이 되어버린
인생에서 난다는 것은, 그것도 폭풍 위를 날자는 것은 정신 나간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콜롬비아대학의 신화학자 죠셉 캠벨(Joseph Campbell)은세상은 나를 파괴하는
흡혈귀(eating machine)이다.라고 했는데 실제의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이제는 날고 싶습니다.!
닭으로 많이 굳은 우리의 모습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직은 독수리의 기상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날개를 펴든 안 펴든 삶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날개를 펴는 사람에게는 고통도
오지만, 숨겨졌던 기상도 펼쳐질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믿는 용기를 펼칠
시간입니다. 평생의 소원을 이제 살 때입니다.
간단하고 실제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소원은 관계입니다.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현상, 즉
소유가 아니라, 만유 속에서 나일 수 있고, 나로 만유를 누리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두세 사람입니다. 즉, 예수님 인격의
참된 관계를 나누는(通) 두세 가정 안에서 참 나(I am)가 회복됩니다. 이 참 나들의
하나됨은 무한 생명에너지를 피워내게 되며, 이 땅의 거짓나라 속에 하나님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허상의 매달림을 놓고 날개를 펼 시간입니다. |